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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가라데의 이야기

최배달(최영의) 총재님

극진가라데 창시자 "최배달"(최영의)


한국에는 바람의 파이터 만화로 널리 알려진 고 최배달 총재님,

전 세계를 돌며 강자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하고 황소와의 사투로 47마리의 뿔을 부러 뜨려 강함을 증명한 한국인.


그리고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을 창시한 불세출의 사나이 입니다.


지금 부터 최배달 총재님의 업적을 리뷰 하겠습니다.




1923년 전라북도 김제 출생


실전무도 극진 가라데 창시자


영화 및 만화로 국내에 소개된 '바람의 파이터'의 실존 인물 '최배달'(본명: 최영의),, 극진가라데 창시 이전 1946년 10월에

일본 기요즈미 산에 입산후 세상과 단절한체 초인적인 수련을 하였다.




그 후 1947년 9월 전 일본 가라데 시합에서 우승후 기존의 일본 전통 가라데의 실전적 한계(슨도메-상대를 직접 가격하지 않는 룰)

에 의문을 가지고 일본내 모든 문파를 찾아 실전 대련을 펼쳐 자신의 강함을 입증하였다.


일본내 적수가 존재하지 않게 되자, 황소와의 목숨으 건 사투를 벌여 47마리의 황소의 뿔을 부러뜨리는 한편,

해외로 눈을 돌려 미국 레슬러,복서, 유럽 지하 레슬링 챔피언, 사바테 고수(프랑스 전통무예),. 남미 카포엘라 챔피언(브라질 무술),

스페인(투우소와의 혈투), 태국 무에타이 챔피언, 중국 태극권 고수등 무술이 존재하는 국가의 고수들과 100여번이 넘는 목숨을 건 

시합에서 모두 승리 하였다.






이를 통해 그들의 장점만을 흡수 하였으며,, 그후 미국에서 1953년 FBI의 요청으로 무술 교관을 역임한다.


당시로써는 상상 할수 없는 한손으로 동전 구부리기, 차돌 격파, 얼음 격파, 위스키 병목 자르기 등 초인적인 능력을 보였으며

이를 지켜 본 이들은 그를 "신의 손"이라 불렀다. 


또한 일본 기요즈미산에서의 입산수도 당시 수련장 주변의 나무를 치고 차는 바람에 대부분이 말라 죽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그후, 그는 일본과 전 세계를 돌면서 수많은 타류 무술과의 생사를 건 시합을 통해 얻은 경험으 바탕으로

강유일체(강함과 부드러움 하나가 된다)의 실전 격투무도 "극진 가라데"를 1956년에 창시하게 이른다.



극진이 창시된지 50여년이 지난 현재 세계 1500여만명의 극진 수련생들이 지금도 강함과 건강을 위해 땀과 노력을 쏟고 있으며,

극진 가라데의 특유의 시합룰(풀컨텍트:직접 타격제)은 극진 가라데 이전에는 찾아 볼수 없는 룰이었으며,

이는 그가 수많은 실전 시합을 통해 얻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서양인에 비해 신체적으로 불리한 동양인은 극강의 수련을 (보호장구 없이

자신만의 신체를 단련) 통해 극복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실전 격투 수련에서 부족 할수 있는 인격적 불완전성에 '무도의 완성이 곧 인격에 완성'이라는 확고한 마음으로 

1958년 "What is karate" 라는 책을 저술하여 제자들을 격투술에만 치우치치 않도록 인격 함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후에도 많은 무도 서적을 1994년 병으로 서거전 까지 70여권이나 저술 하였다.


그러한 그의 무도이념은 국가를 초월하여 해외 여러나라의 국왕과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수많은 존경과 감사의 표시를 받았으며

94년 서거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격투가들 사이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중 한명이다.


흔히 일본 무도가들은 최영의 총재를 "스승의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다"라고 곧 잘 얘기하곤 하는데, 

이말은 곧 극진의 역사는곧 현대 무도의 역사이며, 오늘 날에 이르러 그의 초인적 수련을 받은 제자들이 세계 격투의 중추적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때 그의 거대함은 이루 말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의 극진 가라데 수련의 가르침은 수많은 실전 격투를 추구하는 단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 극진 가라데의 

영향을 받지않은 단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생전에 조국인 한국에 극진 보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광복 후 만들어진 한국의 국기 태권도의 안전한 정착을 위해

그 꿈을 접어야만 했고, 태권도의 발전에 많은 도움과 후원을 아끼지 않은 것에 태권도 원로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일화 이다.


현재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문장규(마쓰이 쇼케이)가 대를 이어 관장에 취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문장규 관장님은 전통 가라데와의 협의로 극진가라데(국제공수도 연맹 극진회관)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준비를 하는등

총재님의 극진을 더욱더 발전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